Is It True?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덕후이다. 본문
고백하건대 나는 락을 좋아하는 여자다. 락 중에서도 하드락, 얼터네이티브 락 쪽을 좋아하고 영국 출신 밴드들을 사랑한다. 학창시절에는 그냥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애’정도였고,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공연 몇 개를 보러 다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냥 매일 아침저녁으로 듣는 음악이 락이었고, 음악 커뮤니티에 들어가 글을 읽는 취미를 가진, 유투브에서 좋아하는 밴드 노래를 하나 들으면 관련 동영상으로 뜨는 영상을 다 보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락덕’이 되어 있었다. 락매니아가 아닌 락덕. 사람들은 나를 락덕이라 부르고 나도 스스로가 락덕임을 매우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었다. 매니아는 가고 ‘덕’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덕후’라 부르는 말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일본어의 ‘오타쿠(オタク)’에서 온 말이다. 취미라 부르기엔 열성적이고 집착이라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욕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한국에 퍼지면서 ‘오덕후’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덕후는 금세 ‘오덕’이란 말로 보편화되면서 ‘씹덕’(오덕보다 더 심한 사람)을 낳았고, ‘덕’은 하나의 접미사가 되어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다.
그렇다. 우리 주변엔 정말 다양한 덕후들이 있다. 락덕, 일덕(일렉트로니카 덕후), 커덕(커피 덕후), 애덕(애니메이션 덕후), 밀덕(밀리터리 덕후), 여덕(여자아이돌 덕후), 카덕(카라 덕후), 소덕(소녀시대 덕후), 닭덕(닭덕후) 심지어 최근엔 올덕(올림픽 덕후), 박태환 덕후 쑨양까지. 매니아로 불렸던 사람들은 덕후로 다시 탄생하고 이들에게 ‘-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덕후는 다소 희화화되지만 매우 자연스럽게 매니아를 대체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 덕후들은 스스로를 덕후라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여기에 덕후들은 또 다른 덕후를 덧붙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하루 페이지뷰 4,500백만을 기록하는 ‘덕후 집합소’ 디씨인사이드(dcinside.com)에 한 카덕이 ‘카라 갤러리’와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카덕은 코갤에서 활동하면서 ‘코카덕’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코카덕은 코갤에서 활동하는 소덕인 ‘코소덕’들과 대립구조를 낳게 되고, 이들은 이러한 갈등 속에서 스스로를 더욱 강력한 ‘덕력’을 보여주는 ‘코카덕’ 혹은 ‘코소덕’으로 정체성을 강화하게 된다. 카덕 혹은 소덕에서 활동범위를 한정짓는 ‘코’를 갖게되면서 이들은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세분화하는 단계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아이디라는 고정적 형태를 드러내는 트위터에서도 나타난다. 덕친소봇(twitter.com/dfriends_bot)은 ‘혼자 핥는게 외로운 덕들을 위한 덕친소봇’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빼곡히 적어 보내면 덕친소봇은 이를 리트윗해 약 2500여명의 팔로어들에게 재전송을 해준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만 말하지 않는다. “우타이테, 카게프로, 사이퍼즈, 게임실황본진의 잡덕입니다. 최근 로캔팔 준비하고 카게프로마리를 좋아합니다”. “코난을 주로 파고 있으며, 블리치도 좋아합니다. IT나 경제, 패션, 책 그 외것들에도 관심이 좀 있어요”, “영화, 웹툰, 외국배우, 어벤져스, 명탐정코난, 심즈3, 포토샵 하나라도 해당되면 선멘주시고 팔로해주세요”, "어벤져스, 다크나이트 팝니다! 로다즈, 크리스찬 베일, 톰하디도 파구요“. 자신이 ‘덕질’하는 것을 열거하면서 ‘덕후+덕후+덕후+덕후…’로 재탄생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트위터 공간 안에서 글을 쓴 사람의 정체성으로 되는 것이다.
이렇듯 덕후는 많다. 다양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본 당신은 의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너무 비생산적인 덕후만 있는 것은 아니냐고. 과연 그럴까. 2011년 한국에서만 약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는 커덕이다. 그는 커피를 직접 마시고 배웠다. 샤펜 베르거 초콜릿사를 설립한 존 샤펜베르거는 초콜릿 덕후였다. 그는 보통 초콜릿에서 뛰어난 초콜릿을 구별해낼 수 있을 만큼의 덕후였다. 한 편에서 덕후들은 마케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는 핫소스 덕후들을 대상으로 한 10개 이상의 핫소스 업체들이 있고, 이들의 사업은 매우 성공했다. 덕후들은 자신의 덕질을 기반으로 삼아 회사를 설립하거나 한편으로는 매우 중요한 고객이 되기도 한다.
오덕후에서 ‘덕’이 접미사로 이곳저곳에 쓰이기 시작한 이후 이제 ‘덕후’란 단어는 열광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신의 상태를 때로는 귀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적어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덕후란 말로 불리기를 꺼리지 않으며, 자신을 스스럼없이 덕후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드러난 개인의 정체성으로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은연중에 어느 회사의 잠재고객이 될 수도 있는 시대에 온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덕후였다. 아니면 덕후 일 것이다. 이 정도면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 않은가? Duckhoo Makes the World! 덕후가 세상을 만드는 시대에 덕후로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