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True?
[도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중 제5장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즘 - 바타이유와 박정대 본문
제5장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즘 - 바타이유와 박정대
멕시코의 문학가 옥타비오 빠스를 읽다가 옥탑 위의 빤스를 떠올리는 박정대 시인의 재치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를 돋보이는 재치로 풀어나가기 보다는 한 편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시인은 젊은 시절, 옥탑방에 살고 있는 여인과 밀회를 나눈 적 있었다. 이를 시인은 ‘외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여름, 마주친 적은 있으나 이야기 한 번 섞어보지 못한 두 남녀의 이미지가 영화처럼 떠오른다. 어느 날, 건너편 옥탑방에 사는 그녀가 그녀의 하얀 빤스를 널자 시인은 그 모습을 보며 순결함과 동시에 강한 성적 욕망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 그녀를 제 발로 찾아갔겠지만, 어쩌면 그녀는 의도적으로, 훤히 보이는 곳에 빤스를 널면서 서로의 육체적 탐닉을 부추겼을 것이다. 시인에겐 이 경험이 젊은 날의 생채기처럼 하지만 떠올려봐도 기분이 유쾌해지고, 즐거워지는 일이 되었고, 때문에 시인은 시에서 이를 ‘즐거운 외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 강신주는 이를 ‘에로티즘’과 연결하고 있다. 이윽고 꺼낸 철학자는 프랑스의 조르주 바타이유이다. 그가 박정대 시와 엮인 이유는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금지된 성적 대상에서 느껴지는 감정’(p.110)이라고 정의했다. 즉, 도처에 널려 있는 금기나 금지된 것에 대한 강렬한 성적 욕망이라고 에로티즘을 풀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의 ‘금기’를 넣은 것일까. 성적 충동이나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에로티즘은 금지라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 있기 때문에 동물들의 성적 충동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바타이유는 금기가 대상의 에로틱한 가치를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이야기했다. 박정대의 시에서 낯선 여인과 서로의 육체를 탐했던 일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 일이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옥상에 빤스를 널어놓는 일, 그리고 어떠한 언질 없이 동작만으로 나와 함께 하자고 누군가를 방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강신주는 박정대 시인이 강하게 그리워 했던 것은 젊은 날을 내세운 그 안의 ‘에로티즘’이라 규정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은 결혼이라는 동서양을 막론하여 벌어지는 이벤트에 집중한다. 교수님도 결혼을 하셨고, 저도 훗날 결혼을 하겠지만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부라는 새로운 집단을 탄생시키는 게 아니라, 성적 측면에서 결혼은 존경을 받는 행위이기도 하다. 왜? 사회 시간에 배웠듯이, 결혼은 이제 배우자와만 성행위를 하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결혼은 타자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는 수단이다. 즉,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결혼을 통해 한 사람에게만 성적 욕망을 표출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타이유는 결혼을 ‘성행위와 존경의 결합된 형태’라고 정의 했다.
에로티즘이 금기로부터 시작되고, 결혼도 에로티즘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혁신적으로 느껴지는데,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도 에로티즘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사회에서 금기시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강신주는 프롤로그(p.14)에서 이성복 시인을 언급하며, 일상적 삶이 위험에서 안정으로의 이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예술이 ‘낯설게 하기’를 통해 다가온다고 했는데,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논의는 예술적 관점에서 낯설다. 하지만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의 에로티즘을 일상 속에서 찾아본다면 매우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체에서 보여주는 에로티즘에 길들여져 가고 있으며 한 편으로는 더욱 더 금기된 부분을 원하기도 한다. 연예인에 대한 루머는 대게 에로티즘적인 것이 많은데, 이걸 쫓기 위해 인터넷 상에는 NCIS, 즉 ‘네티즌 수사대’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일상에서 에로티즘을 성찰해볼 기회는 많지 않다. 에로티즘이 인간의 본성인 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타자’, 타자끼리의 만남을 위한 ‘도약’, 그리고 ‘낯설게하기’를 통해 에로티즘을 살펴본다면 어떨까? 다매체, 또한 마음에 맞는다면 누구나와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요즘, 에로티즘은 자신보다는 타자의 것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또한 ‘어떻게 자연스럽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우리 생활 안에서 에로티즘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남의 금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몰래카메라’가 그랬겠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지면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대놓고 남자를 유혹하고(tvN 티비엔젤스), 남자친구의 바람기를 보고 싶어 그를 시험해보는 여자친구, 그리고 꼭 모텔과 같은 숙박업소로 향할 때 끝나는 방송('나쁜남자‘시리즈) 등이 그 예이다. ’엑소시스트‘같은 죽은 사람과의 만남이나 범죄 재연 프로그램 모두 넓게 보았을 때 금기를 다룬다는 점이 일맥상통한다. 10대 여가수가 지나친 노출을 하면 이를 성토하는 댓글이 이어지지만, 방송에서 생각보다 의상이나 춤이 성적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발길을 돌린다. 실제로 몇 달전, 서강대에 티아라가 왔을 때 선정적인 춤과 노래로 유명한 그들이었지만, 공연 의상이 긴팔과 긴바지였다. 실제로 혹자는 이걸 두고 ’어떻게 저렇게 꽁꽁 싸매고 오냐‘는 말을 던졌을 정도로 우리는 에로티즘에 자연스러워졌으며 10대 여가수의 노출이라는 금기와 그래도 보고싶다는 욕망을 매번 저울질한다.
하지만 에로티즘의 특성상, 방송을 통해 타자를 만나는 도약이 이뤄지는데,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면에서 에로티즘은 낯설게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더불어 곧 방송인이 될 사람으로서, 이런 경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에로티즘을 간과하다보면 시청자를 놓칠 가능성이 있지만 에로티즘은 엄연히 남녀노소가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익과 상반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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