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True?
나의 노란 배낭 본문
나는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외여행이란 걸 했다. 곱씹어보면 신기하게도, 교정을 거닐다가 누군가 하나투어박람회 표를 주었고, 그 표를 들고 1시간 반이 걸리는 일산 킨텍스까지 가고, 중국 10대 명소 추첨 이벤트가 있어서 사람들이 제일 안 갈 것 같은 황산을 써서 응모함에 넣은 것인데, 그게 딱 된 거다.
당첨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가장 처음 했던 행위는 내 등을 가득 가릴 정도의 노란 배낭을 사는 것이었다. 중국 가이드가선물로 준, 뭐든지 잘 썰린다는 날카로운 장미칼은 패키지 여행 중 비교적 친절히 대해준 한 부부께 부탁했다. 칼을 기내에 들고 못 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광명시청에 모의면접을 보기 위해 기다리던 무리들을 빤히 바라보곤 따끈한 여권을 수령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마치 김영하 작가의 부모님이 달력에 ‘영하중공여행’이라고 써두신 것처럼 나의 첫 해외여행은 ‘내가 배낭매고 세상으로 나간 첫 여행’ 쯤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보다 갑자기 캐리어도 아니고 노란 배낭을 산 내가, 7호선 출근길에 떠오른 게 어찌 우연일까. 3박5일 일정이라 하룻밤은 비행기에서 보냈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꽉 끼는 스키니를 입어 밤새 뒤척였던 나. 대학원생이라 돈이 별로 없어 환전액이 모자라 작은 목소리로 케이블카를 못 탈 것 같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모른체하며 태워줬던 일. 위로는 70대 부부, 나랑 가장 가깝던 이가 70년생이라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나의 첫 해외여행. 책을 덮고는 7호선이 이수, 내방, 고터를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그 때를 떠올리다가 논현역이라는 방송에 화들짝 내린 나는 그 날 내내 노란 배낭을 산 나를 생각했다. -
곧 퇴사하는 친한 직장동료가 내가 2년전 이야기한, 즉 지금 내가 했어야 할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솔직히... 그런이야기를 했었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나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지금, 이번달, 올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꾸준히 하더라도 노란 배낭 같은 순수함이 아님을 내가 더욱 잘 안다.
이것이 2020년 5월까지를 다 보낸, 서른셋의 내가 보내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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