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True?
임신일기(1) 7월 어느 날, 다른 세상에 놓여지다(feat.혼전임신) 본문
평범한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7월 25일 Life in a day에 제출할 동영상을 어떻게 찍을까 콘티를 고민하며 the killers의 the man을 듣는 나는 그렇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2020년 7월 22일. 모든 게 일상적이었지만, 하나만 달랐다. 예정일에 해야 할 생리를 하지 않았다.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겨우 3일 정도 안했을 뿐이니까. 최근엔 규칙적이었지만, 생리라는 걸 시작한 이후부턴 대개 불규칙했고 주기가 길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난반 진심반의 마음으로 출근길 약국에 들려 임테기(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일찍 확인해서 마음편하면 좋잖아-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어차피 아닐텐데 빨리 확인해보지 뭐ㅋ 하는 마음.
그렇게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시간에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아니 그런데.............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T선부터 진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 보면서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오, 왼쪽 선이 진해지네 ㅎㅎ 신기하다........? 왜 진해지지? 하면서 어느새 선은 두 줄.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 앞엔 선명한 두 줄이 자리잡고 있었다. 와, 이거 뭐지? 5분 정도를 벙쪄있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오갔다. 나 결혼해야 되는건가? 집은 어떻게 하지? 이거 어떻게 알려야 하지? 뭐라고 얘기해야 되지? 계획임신도 아니고, 임신이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기에 7월 초에 물놀이하고 술 먹고(엊그제까지 술먹었다) 그랬는데, 나 임신? 두둥!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그래도 불량일수도 있잖아~하는 마음에 침착하게 다음날까지 기다려 똑같은 시간에 해봤다. 그랬더니 이번엔 C선이 희미하긴 하지만, T선은 선명. 이 정도면 재검사라고 테스트기 박스엔 적혀 있었지만, 이미 두 번이나 T선이 진해진 걸 봤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날 퇴근 후, 남자친구를 만나 소식을 전했다. "생리를 안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는데, 두 줄이 나왔어" 외의로 남자친구 표정은 담담했다. 그렇지만 눈으로는 꽤 당황한 듯 했다. 안 믿으려도 해도 너무나 선명한 두 줄이 나와 네 눈 앞에 있었다. 나는 토요일에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고, 남자친구는 같이 가자고 했다.
후에 꿈동이를 보여줄 수도 있어 이 일기를 작성하는 것이라 꿈동이가 많이 섭섭해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나와 남자친구는 결혼 얘기는 아주 쪼끔, 웃으며 농담하는 류에 가까웠고 실제로 소식을 알렸을 때도 남자친구는 '신혼을 더 즐기고 싶다'고 어필하기도 했다. 소식을 여러 사람에게 알린 후에야 "축복"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 당시 우리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떨칠 수 없는 당황스러움과 혼돈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금요일에 장거리 출장을 가고, 심지어 산부인과를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에도 난 따릉이를 탔다. '혹시나. 혹시나 모르잖아. 이대로 없어질 지도 모르잖아'
토요일 아침 운동을 끝내고 산부인과에 가기 위해 버스에 탔다.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긴장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한없이 정말 한없이 맑고 더운 날이었다. 버스에 에어콘은 어찌나 세던지. 그렇지만 에어컨 세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못할 정도로 의식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은 두려웠고, 조금은 ... 기대도 되었고,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침만 꿀꺽꿀꺽 삼켰다.
코로나 때문인지 주말 아침 산부인과는 적당한 대기 손님만 있었다. 예약을 하고 갔던지라, "임테기에 두 줄이 나와 확인하러 왔다. 예약했다"고 했더니 가장 먼저 돌아오는 질문은 "결혼하셨나요?" "아니요" "유지하실건가요?" "네"
버스에서의 당황함과는 달리, 너무나 확신에 찬 나의 "네" 질문에 나 스스로 놀라며 혈압, 몸무게를 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타인의 눈엔 철 없어 보일 게 뻔한, 운동복 차림의 대강 어려보이는 듯한 두 남녀가 같이 카트라이더를 하다가 들어오란 소리에 게임을 후다닥 끄는 모습) 건강검진으로 유방초음파, 갑상선초음파 등을 해봤던터라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베드에 눕고 옷 가지를 정리하고 의사선생님이 초음파 기계를 갖다대자마자 말씀하셨다.
"임신하셨네요. 착상이 잘되었네요"
그리고 6주라고 하셨다. 마지막 생리 시작일부터 센다고. 아니, 이 개념도 처음 알았습니다만! 당연히 4주라고 생각했는데 6주라니요? 맥주 오지게 먹고 보드카 먹고 인삼막걸리 먹고 쏘오주 먹고 난리 부르스를 쳤는데ㅎ 6주 잼 ㅎ
10여분만에 진료를 끝내고 받아든 "임신을 축하드립니다"와 초음파 사진.... 사람의 형체의 히읗자는 찾아볼 수 없고, 아기집도 보이지 않는 정도였지만(이건 나중에 알았다) 너무나 선명한 두 줄처럼 선명한 점이 뿅! 내 눈 앞에 있었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이끌려 들어간 곳은 상담실.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할 수 있는 확인서를 만들어주시더니 바로 태아보험 상담을 하셔서 ㅎ_ㅎ 아는 지인이 있어 더 알아보겠다고 하곤 나왔다.
아, 가장 큰 산이 남았구나.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남자친구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당혹감은 어디에 가고 어느새 생긴듯한 책임감의 씨앗. 적은 나이도 아니고, 우리에게 조금 이르게 찾아온 생명이라는 데 동의가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는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여자친구가 애를 가졌어요" 참으로 명확하면서 일말의 여유를 주지 않는 한마디다. 다행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담담하시면서 괜찮아하시는 듯..
아니 난 근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하지???? 남자친구의 속시원한 한마디와 비교되게 난 이틀을 내내 고민하다가 일요일 저녁에 가족 밥상에서 말씀드렸다. 으아아아아아....!!!!! 그치만 그래도 내 안에 생명이 세상에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병원에서의 떠들석한 조우도, 수화기 속 목소리도, 가족들의 당황스러움과 놀람이 다 무색하듯 유방이 커지는 것을 제외하면 몸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막상 생명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니, 이젠 잃을까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칠렐레 팔렐레 돌아다녔는데. 그런 헛된 마음으로 널 잃으면 어쩌지?? 차라리 임신이 유지되고 있습니다!!하는 경보라도 매일 알려주면 좋으련만. 산부인과 다녀온 그 다음주, 한 번 불안한 생각이 들자 떨칠 수가 없다. 임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또 다시 출근길에 산 임테기는 선명한 두 줄이다. 아, 너 잘 있구나. 후에 안 문구지만 "아기는 엄마의 생각보다 강하다"
넌, 뚜렷한 두 줄에 비해 아직 몸의 형체도 없고, mm를 잴 수도, g을 잴 수도 없을만큼 정말 작디 작은 존재지만, 내 안에 터를 잡아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구나. 의학적으로 배아라 부르는 너에게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주고 잘 크라고 쓰담쓰담 해주는 이유가 다 있구나. 나에게.... 엄마란 이름을 선사해주려고 하는구나. 많이 당황했고, 처음엔 좋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반가워. 반가워 꿈동아.
** 23일이 되는 날, 참 희한한 꿈을 꿨었다. 배경은 인스타그램으로 친구(@친구)가 며칠 전 임신 사실을 안 다른 친구에게 쌀을 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임신한 친구에게 웃으며 "애기 먹으면 되겠다 애기" 하며 꿈에서 깼는데. 이토록 또렷히 기억나는 문장에 주어가 없는 이유가 있었네. 내 애기, 내 아가를 말한 거였다 ^.^;;; 친구 두 명이 동시에 나와서 단톡방에 얘기해야지- 하다가 바빠서 오전 시간 다 보내고 점심시간에 임테기 해본건데. 와! 태몽이었나봐! 친구들은 예전엔 복숭아 밭 이런 태몽을 꾸었지만 시대가 바뀐만큼 인스타로 태몽을 꾸는거라고 한참을 웃었다. 역시... IT정치/온라인 커뮤니티 전공은 어디 안가나봅니다.
*** "엄마 젊을 적에 인스타그램이라는 SNS가 있었어~" "엄마 SNS가 뭐에요?" "SNS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어쩌구저쩌구(이미 신나서 싸이월드부터 이야기함)" "네???"
우리 꿈동이 태몽이 인스타그램이었다고 난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넌 핵인싸가 될건가..? 인플루언서가 될건가..? 아니면 인스타사람들처럼 스물셋을 세번째 스무살이라고 말하는 알 수 없는 신인류가 될껴...? 아빠따라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개발자가 될거니..?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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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주 증상
1. 생리를 안함 (당연)
2. 속이 미슥거린다거나 우웨에엑 하는 징조 전혀 없음 (사바사. 전 알고보니 입덧 없는 사람ㅋ)
3. 기초체온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코로나19 시국이라 매일 쟀지만 37.0도를 넘는 일은 흔치 않았음
4. 생리 하기 직전에 유방의 변화가 있는 분들이라면 비슷하게 커질 수 있을 듯
(생리를 안하는데도 유방의 변화는 계속 유지-생리하기 전처럼 커짐)
5. 몹시 피곤. 회사 계단 안 보이는 곳에 서서 눈 감고 있을 정도로 졸음이 몰려오고 하품X하품X하품
2시~6시 내내 졸린 적도 있었다 으아아 살려줘
6. 임신확인하고 5일정도 지난 금요일(6주 5일차), 갑자기 컨디션이 너무 좋아져서 걱정했는데
엄마께서 몸이 적응한 것이라고 했다. 컨디션 좋음 정도는 "지금 당장 달리기를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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