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True?
임신일기(2) 코로나19에도 보건소는 멈추지 않는다 + 지하철 임산부배려석 등 극초기 때 여러 이야기 본문
7월 25일 임신을 확인하고, 26일 엄마아빠께 말씀드리고 그 다음날 27일, 회사 부장님께만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이가 있는 부장님이셔서 다행히 잘 이해해주셨다. 이후 광복절집회로 코로나가 심해져 회사 차원에서도 재택근무를 시행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안정을 취해야 할 초기(8~12주)를 집에서 일하며 보낼 수 있었다. 재택근무를 먼저 제안한 것도 회사. 남들보다 빠른 재택근무를 위해 HR팀 책임님께도 말씀드렸고, 소식을 듣고는 정말 너무나 좋아해주셨다. (책임님이 따님을 가진 엄마라는 사실도 이 때 처음 알았다) 비록 혼전임신이었지만 그 누구도 우려의 말을 표하지 않았다. 서른 세살이라는 나이가 있어서 그렇겠지만, 임신 자체가 쉬운 게 아니란 걸 임신을 하고나서 알았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렇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만 든다. 할머니와 함께 성동구의 숲을 누비는 꿈을 꾼 것도 이 즈음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성동구에서 생긴 꿈동이, 할머니가 보러 오신 것 같다고. 인사시켜드린 것 같다고.
꿈동이가 건강하게 착상한 것도, 남자친구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께 잘 말씀드린 것도, 회사에서 양해를 해준 것도 다 좋았지만 내 마음을 심히 옥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엽산. 대개 임신 준비하면 부부가 모두 엽산을 먹고, 임신 극초기 여러 기관이 형성되는 데 엽산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임산부 수첩에서도 엽산의 중요성이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그러나 나는 그 즈음 식사량 자체를 줄인 상태로 두달을 보냈다. 여름 맞이이자 나보다 마른ㅋㅋ 남자친구의 다이어트 소식에 동참하고자 4월 27일부터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으며 몸관리를 했다. 아침은 집에서 일반식을 먹고, 저녁은 땡기는 날은 가볍고 먹고 안 땡기는 날은 잘 안먹었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배고프다가도 달리기를 한바탕 하고 오면 배가 안고프다. 그런 날은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다)
이 임신일기와는 맞지 않지만 ㅋㅋㅋ 간단히 정리해보면ㅋㅋㅋ
4월 27일부터 7월 24일까지 - 아침: 일반식(영양제: 종합비타민, 칼슘&마그네슘, 오메가3) 프리바이오틱스 - 점심: 닭가슴살+단호박+상추+셀렉스 프로틴음료+채식음료수 - 저녁: 때로 안 먹거나 때로 가볍게 먹거나 때론 많이 먹음. 엄청난 체중감량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아서 되는대로 먹었다. - 운동: (달리기) 4월 70.9km, 5월 152km(새나3기에서 150km뛰기 챌린지를 해서 꾸역꾸역 성공) 6월 52.8km 및 홈트 병행(스쿼트, 요가소년님의 복근운동 요가-사이드플랭크/플랭크 등, 데드리프트, 덤벨 이용한 어깨운동 등) |
꾸준히 하다보니 자주 보는 사람들이 '살 많이 빠졌다'고 할 정도로 변화가 있었다. 아, 그런 말 들을 때는 좋았지만 이미 임신을 확인한 건 6주. 임산부 수첩을 보니 신경이나 심장 등 중요한 장기는 다 생겼다고 하는데. 아니 어쩌죠 ㅠㅠ
그래서 회사의 양해를 구하고 2시간 여 일찍 퇴근하여 7월 28일 화요일, 보건소의 문을 두드렸다. 보건소에 전화해보니 코로나 선별진료소로 인해 임산부는 방문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보건분소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는 보건분소로 향했다. 다행히 내가 다닌 고등학교 근처여서 지리는 꽤 알고 있었다. 보건분소에 가서 임신확인서를 보여주니 10분 정도 대기 후 엽산 2박스, 광명시 내 지정 산부인과에서 쓸 수 있는 산전검사 쿠폰, 기형아 검사 쿠폰, 여러 팜플렛, 임산부 뱃지를 주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이즈맘산부인과가 광명시 지정병원이라 산전검사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산전검사 비용을 많이 지원해줄 줄 알았는데 한 9천원..?^^ 조금 당황했다 ㅋㅋ
16주 즈음에 방문하면 철분제를 준다고 한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부 바우처 60만원과 보건분소에서 챙겨주는 여러가지 소소한 배려들이 좋았다. 물론 쏟아붓는 예산에 비해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체감하고 있으나(경단...), 그래도 이런 장치들이 있다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후술하겠지만, 이런 장치와 일반 사람들의 임산부에 대한 인식은 같이 가고 있지 않고 있다는 걸 몇 개의 사례를 통해 절절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엽산은 날짜를 써둬서 까먹지 않고 매일 먹게끔 나 자신을 유도했다.ㅋㅋㅋ
또 임신 소식을 점차 주변에 알린 것도 이 즈음이라,
임산부로서는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응슷응, 대학동기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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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주차, 입덧도 없고 건강한 편이지만, 임신 전과 달리 지하철 탑승할 때 '앉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몰려왔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피로도가 예전보다 심각했고,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출퇴근을 할 때 배가 조금 아프고 숨이 가쁘기도 했다. 배지를 받고는 바로 부착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공식적으로 배려석이라 붙은 자리니, 제가 좀 앉아보겠습니다'라는 표시같아서 많이 부끄러웠다. 설국열차의 유명 대사, 틸타 스윈튼의 "keep your place"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조금 괴롭기도 해서 친구들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앉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다음날부터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래 난 꿈동이 엄마야! 꿈동이를 위해서는 조심해야해!' 라는 엄마로서의 큰 마음을 먹고 나니 뻔뻔하게 그 앞에 서있을 수 있었다. 아직도 여러 의견이 충돌하지만, 많은 캠페인과 레드벨벳의 안내 방송, 배려석의 핫핑크 덕분인지 10번을 타면 4번은 사람이 많음에도 비어있고, 4번은 자리를 양보해주시고, 2번은 절-대 안 비켜준다.
그 어느날은 아직 뻔뻔함을 50%정도만 단련한 출근길이었다. 배려석이 꽤 멀고 보통 이상의 2호선이었기 때문에 일반석 앞에 서있는데,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나의 배지를 본 듯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배지를 착용한지 하루 이틀 정도였기 때문에 '날 위해서 양보해준건가? 그게 맞나????'란 생각을 1~2초 하던 중 내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냉큼 앉았다. 결국 그 청년은 내 옆에 서 있었고,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나 또한 얼굴이 심히 붉어져 한 두 정거장 서있다가 옆의 객차로 옮겨갔다. 청년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과,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내 경우에는) 임산부배려석에 앉으면 절대 안 비켜주는 절대적 집단인 중년아주머니에 대한 극분노, 그리고 약간의 서글픔이 동시에 몰려와 그 날은 2호선이 강남역까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지하철에서 내려 남자친구에게 이런 복합적 감정을 마치 쇼미더머니 결선무대에 나가 딜리버리는 전혀 되지 않지만 성량은 좋아보이는 스윙스처럼 급하게 토로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끄러웠는데, 꿈동이를 위해 앉아야 한다는 마음을 먹으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난 이제 글래디에이터야. 난 이제 스파르탄이야. 더 뻔뻔해지리라, 전사처럼 아기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또 어느날 출근길은 대림역에서 2호선을 기다리는데, 내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서계셨다. 문이 열리자 마침 임산부배려석만 비어 있었고.... 그 아주머니는 잽싸게 앉더니 내 배지를 한 5초간 뚫어지게 보곤 약간의 갈등을 하다 눈을 감으셨다.ㅋㅋㅋㅋㅋㅋㅋ 급 자는척... 아마 본인도 힘들었을 것 같다 계속 자는 척 하느라 ㅋㅋㅋ 결국 그 날은 서서 갔다.
나도 안다. 출근길이 얼마나 피로하고 퇴근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그래서 배려석에서 정말 숙면하고 계시는 분들 보면 짠하고, 스마트폰 보고 계시는 분들 보면 바쁠 때는 날 위한 여가시간이 이 때 뿐이라는 걸 아니까 또 짠하다 (짠보스) 대체로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난 서서 가는 것도 괜찮지만, 임산부의 80%는 토덧이든 먹덧이든 입덧을 하고, 12주 이전까지는 유산의 위험이 높고, 갑작스러운 신체변화에 당황할 때가 많다. 입덧 없는 비주류 임산부도 절절하게 앉아가고 싶을 때가 있는데, 입덧 있는 24만명의 주류 임산부는 어떨까? 임산부가 되어보니 임산부 배려석은 절대적으로 비워두는 게 맞다는 것을 정말 많이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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