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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치

인터넷 시대를 사는 개인의 정치사상은 유효한가

흐바흐바 2010. 7. 19. 12:41

인터넷 시대를 사는 개인의 정치사상은 유효한가 ⓒ 이헌아



# “우리가 실제 몸담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

1800년과 1900년을 비교하자면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2000년과 2010년의 시대는 다르다.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환경은, 우리의 시대는 그렇지 않다. 인터넷의 발현은 전세계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던이론가 장 보드리야르는 ‘TV는 우리가 실제 몸담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이제 TV를 넘어선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이 우리의 세상을 규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은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 역할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터넷은 지금까지의 땅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가상현실의 전(前)형태인 원격현전(telepresence)은 ‘주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다고 느끼는 행위’ 이다. 이런 특징은 인터넷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또한 인터넷은 손쉽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활동영역을 무제한으로 넓혔다.

한편, 독일의 한나 아렌트는 ‘노동․작업․행위’로 ‘인간’을 규정하였다. 특히 다른 사람과 무엇을 도모하는 행위는 공간, 즉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를 필요로 한다. 세계의 연장선으로 보았을 때, 인터넷은 하나의 세계이다. 즉, 인터넷 역시 정치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 차이의 인터넷, 다중의 인터넷

탈근대는 ‘차이’가 대두한 시대였다. 여전히 현대사회에서도 동일성보다는 차이가 중시된다. 인터넷에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연결된 면모가 강하다. 이러한 차이가 탈근대에는 동일성의 해체로 대두되었다면, 인터넷시대에는 기술로 발현된다. 기술에 몰입되며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점점 앞을 보지 않고 밑을 보며 걷는다. 이동 중에도 기술이 최고로 형상화된 전자 기기를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중독 등은 차이와 개인주의 중 기술에 몰입된 사례이다.

이러한 차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에는 ‘다중’의 개념이 우위에 있게 된다. 스피노자는 다중을 공적인 무대에서 하나로 수렴되지 않은 채, 운동의 구심적인 형태 내부에서 소멸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속되는 다원성(plurality)이라고 보았다. 즉, 다중은 다수로서의 사회적․정치적 실존 형태인 것이다. (파올로 비르노, Paolo Virno, 2004;38)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다중은 스피노자의 해석과 유사할 뿐이지, 지금까지 다중으로 제시된 그 어떤 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인터넷은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홉스가 다중에서 ‘인민’을 개념화해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현재는 인민이 해체되어 다시 다중으로 돌아가는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개개인의 역할을 돕는 전자기기들은 이를 가속화시킨다. 인터넷 시대에서 동질성을 요구하는 곳은 거대기업 외엔 더 이상 없다.

왜 인터넷 시대의 개인들을 다중으로 봐야 하는가. 인터넷 시대에 익숙한 개인은 불특정한 사람과 만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과거와 달리 그들을 모이게 만드는 요소는 관심사이다. 심지어 미국에서 선보인 ‘세컨드라이프’에서는 가상 국가를 만들 수도 있고, 그곳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사용한다. 민족이란 이름도 인터넷 시대에는 흩어진다. 개인의 국적과 사는 곳은 인터넷 공간으로 전환되는 순간부터 개인의 개인성(personality)을 만드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적의 개념이 무효해진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국적은 정체성(identity)으로서 큰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큰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공유된 이해(Shared understanding)’가 인터넷 접속 순간부터 전환되는 것이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상세계 ‘미에플 스토리’에서는 가상부부였던 아내가 남편의 아바타를 살인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상공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현실세계의 공유된 이해가 약한 사람이다.

 


# 인터넷 시대의 정치사상

앞서 언급했듯 인터넷 시대에는 다중이 좀 더 심화된 개인의 관념을 가지며, 동시에 다중으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고 인터넷 안에서 실존한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들의 정치사상 방식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첫 번째로 사(私), 두 번째로 개방성이 있다.

인터넷 시대에서의 정치사상은 공적인 것이 사적으로 전환되면서 시작된다. 그 근거를 인터넷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용해봤을 ‘다운로드(Download)’에서 찾을 수 있다. 특정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라간 콘텐츠를 다운로드하는 순간부터 개인의 것이 된다. 인터넷 상에 올라가 있는 것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적이지만, 다운 받아 개인의 저장매체에 저장되는 순간부터는 사적인 것이 된다.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개인에게 달려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인터넷 시대에는 정치 역시 사적인 것이 된다. 정치를 생각하는 기준이 점점 ‘나’로 변해가는 것이다. 사회를 꿰뚫는 하나의 이슈가 있다. 이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세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생각과 의견은 사적이다. 앞서 언급한 다중의 개념을 차용한다면 사적인 의견 역시 다원적으로 존재한다. 다양한 의견이 많을수록 공(公)은 좀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 시대의 여론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개개인의 의견이 한데 모인 기능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게 타당하다. 여론은 동일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개인의 생각 과정이 비슷함을 뜻한다. 이는 현실세계의 공유된 이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즉, 공유된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은 생각하는데, 인터넷 속의 개인에게는 이것이 사적인 근거와 논리성을 갖추어 표출되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지속해야 한다’, ‘4대강은 반대한다’는 큰 줄기는 ‘공유된 이해’에 근거하지만, 곁줄기는 엄연히 사적이다.

사적인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다중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 공적인 어떤 하나의 것으로 수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모순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이다. 공적 이슈에서 사적인 것이 커지기를 두려워했던 모습은 인터넷 시대 이전이지, 인터넷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사(私 )가 커진다고 해서 공(公)이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개방성은 인터넷을 이루는 네트워크와 관련이 있다. 인터넷에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성격이 ‘강한 네트워크’이든, ‘약한 네트워크’이든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과거와 아주 다른 생각이다. 그리고 이 점은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매우 심도 있게 영향을 끼쳤다.

이제는 인터넷을 사용하면 누구나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단순히 치자가 되어야지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동시에 피치자로서의 행위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치인을 선출하고 특정 정당에 비례대표 한 표를 던지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된 이후로 가능한 것이었지만, 정치여론을 만드는 어젠다세팅(Agenda setting) 기능은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불가능했다. 또한 인터넷의 개방된 네트워크는 이런 식의 정치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개인이 속한 현실세계의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던져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터넷을 통해 배운 논리가 현실세계로 전환된다. 지난 6.2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터넷은 투표라는 정치적 행동을 장려하는 거대한 원천으로 작용했다. 트위터(Twitter)와 같은 마이크로블로그(Mircoblog)를 지나치게 과대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인터넷 시대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개방성이 극대화된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바로 볼 수 있고, 다중성을 띠는 개인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개방성을 통해 정치사상은 획득되기도 하며, 네트워크에 의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정치사상 그 자체에 함몰되지도 않는다. 정치사상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내걸지 않아도 정치적 행위를 일상화 하는 것 자체에서 정치사상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 위기

하지만 분명 인터넷 시대의 정치사상에도 위기는 혼재한다. 좀 더 정확히, 정치에 대해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개인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와 스타, 선정적인 것에 밀려 인터넷 시대의 개인은 인권, 빈곤, 환경 등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다. 전자의 것, 좀 더 가볍고 쉬운 것을 선호하는 풍토는 언제나 있어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정치와의 네트워크보다 연성화된 것과의 네트워크도 쉽다. 정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질수록, 정치는 소멸된다.




# 가능성

‘기술편향주의’ 등의 시각과는 논외로 현대 정보사회가 인터넷 시대 이전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앞으로 계속 가상과 네트워크의 혼합체인 인터넷이 개인의 한 부분으로서 더욱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인터넷 시대의 정치사상 역시 이와 같은 점에서 함께 발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사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정치적 담론의 산재라고 해야 할 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은 인터넷 시대에 할 수 없었던 것,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현실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공적인 것이 사적으로 전환되거나, 개방성을 필두로 개인의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점은 인터넷 시대의 다중에게는 로그인(Log-in)을 하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정치의 연성화의 위기가 있지만, 다원성을 무기로 하여 개인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정치치적으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여기에 기술이 개인을 고립시킬 가능성, 개인주의의 심화를 정치라는 이름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으로 하는 정치적 실천’이라는 정치사상의 정의를 고려해본다면, 인터넷 시대의 정치사상은 실천을 넘어 다중의 이름으로 실존하는 것에 가깝다. 직접 정치담론을 생성하는 사상적 측면에 와 있는 개인이 바로 지금 인터넷 시기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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