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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본문

글/정치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흐바흐바 2011. 2. 19. 22:24

작성일 : 2011년 2월 18

 

1. 도입부 고찰

  22쇄까지 발행된 <88만원 세대>는 명성에 비해 도입부가 너무 초라하고 괴기한 느낌이다. 왜 하필 경제와 섹스를 연관시킨 것일까? 우석훈 씨도 경제학자이기 전에 사람임은 인정하나, 경제와 섹스를 굳이 관련지었어야 하나란 생각이 든다.

16-18세가 동거를 못하고 결혼을 못하는 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 남자 18세 이상, 여자 16세 이상이면 혼인이 가능하다. (단,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함) 법적으로 부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16-18세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로엘백화점 사장인 ‘돈 잘 법니다’ 김주원 씨도 자신의 결혼은 M&A라고 생각하며 심사숙고 했는데, 왜 다른 이들이라고 그렇게 생각 안하겠는가. 단순히 일확천금을 바라는 결혼이 아니더라도 10대 때의 연애로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커플은 경험상 99.9% 없었다. 동거나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서로가 (여러 조건에서) 미성숙하다는 사실을 요즘 16-18세는 우석훈 씨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또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중학생 1만8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15.6세의 청소년들이 ‘첫 경험’을 한다고 말한다. 이 결과를 우석훈의 논리로 따지자면 그들은 경제적인 논리에 전혀 구애 받지 않는 ‘부르주아’ 청소년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결혼한 부부처럼 ‘할 건 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우석훈 씨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들도 ‘이몽룡과 성춘향처럼 고급 체위’를 시도할 지도 모를 일. 16-18세의 동거와 결혼을 단순히 ‘돈이 없어서’라는 경제적인 이유로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우석훈의 논리대로 그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들이 ‘미성년’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16-18세 청소년들이 돈만 있다면 동거를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할까? 그들이 그 나이에 결혼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미성년으로서는 사회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없고, 아직도 건재한 유교적 시스템이 녹아 있는 가족적 문화 때문이다.

 
이 같은 도입부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다. 다수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면, 나도 ‘동거권 같은 자연적인 권리를 강하게 압박받는 경향이 있’는 것(p.38-39)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경제와 섹스를 (굳이) 좀 더 긴밀히 연관 짓길 원한다면 차라리 20대를 대상으로 하되, 엄기호 씨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연애’ 편 중 모텔 내용이 나오는 쪽수를 참고했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2. 가짜 10대와 진짜 10대

<88만원 세대>의 초판은 2007년에 나왔다. 그 동안 개정판 없이 인쇄를 한 것으로 보아 내용은 거의 변한 게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우석훈 씨가 생각하는 10대는 정확히 ‘나’였다. 즉, ‘지난 5년간 화장품 회사들은~’(p.58)에 등장하는 10대는 ‘나’였다는 의미이다. 나는 2007년에 학교를 입학했고, 2001~2006년간은 14~19세로 살았다. 우석훈 씨는 1318마케팅이 매우 수준이 낮다며 비난을 했지만 실제로 당시에 1318로 살았던 내가 느끼기에는 그러한 마케팅이 속는 친구들은 없었으며, 색조화장을 하는 친구도 없었다. <88만원 세대>에 등장하는 10대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너무 과장되어 있다.

 

3. 경쟁 혹은 competition ¹

우석훈 씨는 20대를 세대 간 경쟁, 세대 내 경쟁 등, 경쟁에 몰려 있어 ‘차가운 자본주의(Cold capitalism)’에 잠식해 있다고 서술했다. ‘승자독식주의’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경쟁 그 자체에서 또 다른 경쟁(competition)으로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슈퍼스타K이다.

‘자기 과시의 시대’ 경쟁하는 젊음은 즐겁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 위주 예능에서 틈새시장으로 시작됐다. 인지도가 높은 스타급 출연자를 확보하지 못한 케이블 업계가 ‘스타 메이킹’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진학·취업 등 경쟁사회 풍토가 반영됐다. 2009년 QTV에서 ‘열혈기자’를 제작했던 이문혁 프로듀서는 “참가자들이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아예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는 스펙 쌓기에 유리하다고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했다.

직능의 전문화가 자기 과시욕이 강한 세대와 만난 것도 배경이다. 노래·요리·디자인을 취미로 즐기는 데서 벗어나 시장에서 공개경쟁을 통해 프로페셔널로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보상이 크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중앙일보, 2011.02.17)

 

슈퍼스타K는 극도의 경쟁으로 돌아가는 서바이벌 시스템이지만, 이런 방식이 화두로 떠오르진 않았다. 경쟁을 즐기고, 패배를 인정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비춰졌기 때문이다. (또한 오디션프로그램에 익숙한 대중들은 오히려 이런 포맷을 선호하기도 한다) 심화된 경쟁 사회에 살지만 한 편으로는 경쟁을 즐기는 20대. 그건 판타지 같은 슈퍼스타K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익숙한 경쟁은 그들에게 단순한 competition인가? '88만원 세대’에게 경쟁의 철학은 무엇일까?

더불어 김제동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자랄 땐 좀 모자란 친구가 있으면 놀 때 '깍두기'라며 끼워 주고 함께 놀았다. 승리의 기쁨은 함께 나눴지만 패배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아이들을 '왕따'라 부른다".


competition의 루저는 깍두기가 될 수 있고, 경쟁의 루저는 왕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만 22세인 나는 깍두기의 경험이 있는데, 지금 10대들에게는 왕따가 더 익숙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도 세대 간 분화가 진행되는가?

   ¹ competition 1.경쟁 2. (경연)대회, 시합 3. 경쟁자, 경쟁상대 (출처:네이버영어사전)



4. 아쉬운 점

- <88만원 세대>를 풀어가는 주요 방식은 50명 전문가 좌담(이라기에는 뭣하고 질답 정도)과 경제학으로 평가한 세대론이다. 개인적으로 엄기호 씨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더 높이 사는 편인데, 엄기호 씨의 책에는 20대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석훈 씨가 ‘20대의 화법 자체가 다르다’는 삼성 제일기획 사보의 말을 잘 이해했다면 책의 구성을 좀 다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공저자 박권일이 88만원 세대보다는 나이든 약 89만원 세대 정도 된다면, 그는 차라리 20대의 시각으로 무엇인가를 첨예하게, 날카롭게 동의하거나 반문하는 모습을 보여도 좋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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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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