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True?
클레이 서키 <많아지면 달라진다> 본문
Shirky, Clay. 2010. Cognitive Surplus, Brockman Inc. 이충호 역. 2011. 『많아지면 달라진다』. 서울: 갤리온.
Ⅰ. 인지잉여의 등장과 활성화의 특성
1. 공공미디어에서의 인지 잉여의 등장
클레이 서키(Clay Shirky)의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기본적으로 ‘인지잉여(Cognitive Surplus)’란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지잉여란 “전세계 시민들이 자신의 여가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모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자원”으로, “사람들과 공유하고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공공미디어”는 인지잉여를 현실적으로 표출시키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공공미디어는 인터넷으로 대표된다. 환자들이 모이는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부터 소셜 네트워크 열풍을 담은 페이스북까지 공공미디어를 통해 인지잉여가 극대화된 사례들을 책 전체에 걸쳐 제시하고 있다. 즉, 책의 주제는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이를 공공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에 관한 내용들이라 할 수 있다.
서키는 사람들이 스스로 미디어에 들어가 컨텐츠를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이유를 꽤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여가시간이라는 바탕 위에 개인적 내재적 동기인 ‘자율성과 유능성에 대한 욕구’, 사회적 동기인 ‘연결성(멤버십)과 공유․관대함’이 합쳐지면서 개별적인 시간의 합이 일반적 사회자산으로 전환, 인지잉여의 형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과 연결된다. 사회자본이란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본으로 본 개념’이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roudieu)가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한 개념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자원을 얻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직간접적 인맥의 총합(p.16)을 가리킨다. 즉, 현대인들은 여가시간에 위에 설명한 동기를 원동력으로 삼아 인터넷에 접속하게 되는데, 이 때 인터넷에서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든지간에 인맥을 쌓게 되며 이는 사회자본으로 환원될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다만 인지잉여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사회자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자본의 크기는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연결망의 규모와 그 연결망에 포함된 각 개인들이 소유한 자본의 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p.16) 인지잉여와 사회자본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그 사람 역시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규모 형성의 가능성과 이것이 인맥으로 확대돼 어떤 일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2차적 가능성이다.
인지잉여의 이러한 특징은 인터넷이 점점 더 발달함에 따라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등장한다. 페이션츠라이크미(patientlikeme.com) 사이트에서 희귀병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치료법을 공유하면서 직접 자신의 병을 치료해나가는 능동성을 갖게 된다. 기존 권위를 대표하는 의사에게 저항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가장 큰 관심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다. 이렇듯 기존 질서를 수용하지 않고 비슷한 사람끼리 최선의 방법을 공유하는 행동은 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한 창구가 있었을 뿐 아니라 직접 치료법을 찾아보고자 하는 능동적인 의지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인지잉여는 힘(source)의 원천을 바꾸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는 쌍방향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역으로 인지잉여는 부정적인 부분도 포함한다. 이는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것이지만, 인지잉여가 나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에서 일어난 타블로 학력 위조 의혹 사건과 ‘타진요’이다. 특히, 타진요는 왓비컴즈라는 한 이용자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이름의 네이버카페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는데 회원수가 몇 십만 명이 되면서 사회적 이슈로까지 비화되었다. 타블로 측에서도 사태가 심각해지자 자신의 졸업증명서를 보도하게 하는 등 맞섰지만 조작 가능성을 거론하며 타블로는 점점 더 궁지에 몰렸다. 결국 MBC가 방송 시간을 할애해 학력이 위조된 게 아님을 밝힘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이 사건에는 몇 십만 명을 자랑하던 타진요가 숨어 있다. 타진요의 많은 회원을 통해 인터넷 여론이 타블로가 학력 위조한 것으로 굳혀지면서 타블로는 의혹을 검증하지 않으면 연예계 활동은 물론 사회적인 위치까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 사건이 더욱 눈길을 끄는 점은 상황을 종료시킨 주체가 MBC라는 기존 권위의 대표주자라는 점이다. 지상파라는 가장 거대하면서 파급력이 높은 매체가 선택되었다는 점은 인지잉여가 언제나 순기능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인지잉여가 잘못 사용되면 서키의 설명과는 반대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Ⅱ. 국내의 인지잉여 사례: 딴지일보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컨텐츠가 가장 처음 발돋움하는 공간이 있다면 페이션츠라이크미(patientlikeme)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일 것이다. 한 편으로 커뮤니티와 같은 구체적인 플랫폼은 없으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얻은 컨텐츠 그 자체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이다. ‘나꼼수’는 시장에서는 만들 수 없는, 공유되고 상호통합 조정되는(p.191) 하나의 문화로 보는 게 더 맞다. 서키가 제시한 인지잉여의 메뉴얼과 100% 알맞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부분 유사한 부분이 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꼼수가 보여준 여러 상황을 비교해보는 것은 꽤 의의가 있지 않을까. 그간 나꼼수가 보여준 상황을 비교해보면서 서키의 논의를 대입해보고, 동시에 이를 국내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1. 나꼼수의 초기 전략: 정보 제공
가장 먼저 나꼼수 탄생의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나꼼수 초기 멤버 3명이 현 이명박 대통령의 BBK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11년 4월 시작했다. 딴지일보 운영자 김어준, 전 국회의원 정봉주, 라디오PD 김용민이 그 구성원으로서 김어준을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즉, 나꼼수의 초기 의도는 BBK 정보를 알리는 데 가장 치우쳐져 있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기존 미디어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기존 주류 미디어들은 BBK문제를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으며, 임기 3년 동안 많이 잠잠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시 BBK문제를 들고 나온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기존 미디어에 전혀 못 미치는 파급력만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나꼼수 초기는 흥행의 실패와 성공에 집착하기보다는 정보를 알리는 데 더욱 주력한 모습이었다. 결론적으로 특정 몇 인으로부터 시작된 점과 기존 미디어에 대항했다는 점은 인지잉여의 형태와 유사하나, 지속적으로 나꼼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4명 (이후 주진우 기자가 9회부터 출연하면서 4명으로 굳혀짐) 이라는 점은 컨텐츠 자체에는 인지잉여 특성이 적음을 말해준다.
2. 나꼼수의 플랫폼: 팟캐스트
나꼼수에서 특히 눈여겨 볼 점은 어떤 플랫폼을 이용했는가 이다. 앞서 기존 주류미디어와 대척점에 있다고 밝혔는데, 나꼼수가 이용한 플랫폼은 팟캐스트였다. 이는 곧 인지잉여의 공공미디어와 일맥상통한다. 팟캐스트는 애플 유저라면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공간이고, 나꼼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안드로이드 마켓에서도 이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되었다. 인터넷에도 손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겨났다. 나꼼수를 청취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는 셈이며, 이는 매우 높은 ‘정보 접근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팟캐스트 공유는 서키 식으로 말하면 ‘공적 공유'(p.239)에 가깝다. 협력자 집단이 공적자원을 만들길 적극적으로 원하는 경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 나꼼수 팬덤이 형성되면서 활발하게 논의된 사안들(특히 10.26재보선을 앞두고 주진우 기자가 폭로한 나경원 후보 1억 피부관리실 등록은 트위터를 통해 가장 활발히 이야기된 이슈 중 하나였다)은 협력자 집단 내부에서 벌어진 공동체적 공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팟캐스트를 이용한 공동체적 공유는 이후 나꼼수가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그 공유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꼼수 팬덤이 10.26 재보선 선거 등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발휘하자 이후 나꼼수에 대한 시선은 더욱 쏠리며 하나의 정치문화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꼼수 팬덤이나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나꼼수 콘서트 등이 힘을 발휘하며 한 집단이 사회를 변화시키려 적극적으로 노력한 시민적 공유의 형태가 생겨나기도 했다.
3. 홍보와 지지의 인지잉여: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
팟캐스트 외에 나꼼수가 혜택을 본 공공미디어가 있다면 개개인을 기반으로 한 SNS이다.
이런 측면은 곧,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개별적 시간이 ‘나꼼수 지지’라는 하나의 사회적 자원으로 뭉쳤다고 가정했을 경우 인지잉여에 가깝다. 나꼼수는 특히 트위터를 통해 화제가 된 측면이 많다. 트위터는 오프라인 관계에서의 친구들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든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든 어떠한 형태로든 ‘네트워크’를 필수로 한다. 트위터는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 위주로 관계를 맺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적 있을 정도로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는 쉽게 직접적 인맥으로까지 변하는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트위터의 성격은 나꼼수에 영향을 미쳤을까. 여기에는 책에서 나온 ‘사회자본(social capital․p.16)’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사회자본이란 피에르 부르디외가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한 개념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자원을 얻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직간접적 인맥의 조합을 가리킨다. 인맥의 조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형태가 나꼼수 현상에서는 특히 트위터를 통해 발현된 경우가 많았다.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바로 11월 30일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나꼼수 콘서트였다. 모인 인원이 만 명 정도라 하더라도 그 인원은 기존 미디어가 아닌, 오로지 SNS로만 만들어진 인원이었다. 그들은 퇴근 후 혹은 하교 후 그들의 여가시간을 적절히 활용하였으며 사회적으로 표출된 인원들의 합이었다. 다만 이것이 투쟁과 관련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나꼼수 콘서트는 모인 사람들을 나꼼수와 멤버들이라는 가장 충실한 형태를 통해 만족시켰다. 비꼬지만 ‘가카에게 헌정하는’ 원래 나꼼수의 성격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떠나 일반 인터넷 커뮤니티로 논의를 확장시키면 어떨까. 인터넷 커뮤니티는 서키가 제시한 동기 중 사회적 동기를 볼 수 있는 창구이다. 가장 강력한 멤버십을 누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꼼수 관련 커뮤니티는 크게 나꼼수 팬카페와 멤버 팬카페로 나뉘어져있다. 다음에 있는 나꼼수 팬카페는 회원수가 약 51000여명이며,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팬카페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은 현재 회원수가 약 16만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을 제외하고는 나꼼수에서는 커뮤니티보다는 앞서 언급한 SNS의 파급력이 더욱 큰 느낌이다. 인지잉여의 새로운 플랫폼이 SNS로 확장되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나꼼수는 책에서 언급된 여러 사례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례는 아니나, 나꼼수의 시작과 흥행 과정은 인지잉여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는 공공미디어가, 인터넷이 있었다. 서키는 디지털 네트워크는 모든 미디어의 유동성을 증가시킨다고 서술했다. 또한 이것이 개인미디어와 공공미디어 간 경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꼼수의 시작은 팟캐스트, 무료이면서 높은 접근성을 가진 플랫폼에서 시작하여 팬들을 필두로 SNS을 통해 그 컨텐츠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현재까지 600만 회 정도 나꼼수가 재생되었다는 측면은 새로운 인지잉여의 형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앞서 짧게 언급했던 것처럼 나꼼수 자체 컨텐츠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점은 인지잉여와는 거리가 있다. 나꼼수를 듣는 접근성은 높지만, 나꼼수 자체가 되기에는 크나큰 진입장벽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나꼼수 게스트들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현재 통합진보당으로 선을 보인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컨텐츠를 공유할 수는 있으나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 나꼼수를 인지잉여와 딱 들어맞는 사례라 볼 수 없는 한계이다. 한 편으로 UMC나 URC, 벨소리와 같은 제2차 컨텐츠가 만들어진다는 점은 인지잉여와는 거리가 있어도 현재 미디어 트렌드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꼼수 현상은 어느 정도 인지잉여를 닮아 있으면서도 이를 소비하는 팬들은 인지잉여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현재 이용자 트렌드를 양산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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