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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경영학과를 자퇴한 김예슬씨의 글을 보고 본문

기사수업(2010)

고대 경영학과를 자퇴한 김예슬씨의 글을 보고

흐바흐바 2010. 3. 11. 18:19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고대 경영학과 김예슬씨, 학벌만능주의 비판하며 '자발적 퇴교' 선언


지난 10일 오후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장문의 대자보가 붙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대자보의 주인공은 고대 경영학과 학생 김예슬씨다. 그는 자발적 퇴교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자퇴가 학벌주의로 점철된 우리 사회와 대학교육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며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글은 김예슬씨가 대학을 그만두며 쓴 대자보 글 전문이다.   <편집자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출처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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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꿈을 10년 이상 꾸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나도 그 중에 한 명이다. 꿈의 깊이는 얕을 지 몰라도, 중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시작한 '신문방송학'에 대한 열망은 계속 이어져 나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학생임을 언제나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나에서 출발한 까닭일까. 고대 경영학과를 자퇴한 김예슬 씨의 글은 일단 너무나도 합리적이란 평가를 내려본다.  일종의 '변명'같아 보이는, 내가 왜 자퇴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너희도 알지 않느냐- 라는 류의 글. 물론 이 글에서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나도 동의한다. 나도 스펙을 중요하다 생각하고, 사실 학점을 잘 주는 과목을 수강신청 때 우선순위에 넣은 적도 있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할 당시, 경영학과를 선택한 건 그녀였을 것이다.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이상 그녀 역시 경영학학도로서의 의무를 그동안은 열심히 이행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녀의 선택을 저버려야 한다. 5년이 걸렸든 10년이 걸렸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누구나 씁쓸하다. 내가 말하는 '합리적'이라는 것은 그녀가 내린 자퇴라는 결과보다 그녀의 글에서 엿볼 수 있는 가장 종합적인 느낌이다. 단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후회하는, 씁쓸함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스스로보다는 외부적인 영향이 더 컸음을 항변하는 것도 같다. 어쩌면 영문과에 들어가도 경영학과 전공 학생과 똑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철학과에 들어가도 경영학과 전공 학생보다 더욱 뛰어난 기업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좌절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위풍당당 개청춘」의 저자 유재인 씨도 김예슬 씨와 비슷한 말을 책에서 전했다.  언론사에 취업하기 위해 3년 정도 노력했지만 결국 '그저 그런' 회사에 들어가서 겪은 일을 쓴 유재인 씨의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전두환이랑 싸우는 건 알겠지만, 신자유주의와는 어떻게 싸우지.' 신자유주의때문에, 신자유주의의 바람 안에서 남들이 요구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뻔뻔하고 치졸한 말로 들렸기에 나는 그만둔다? 신자유주의 바람 안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대학을 멀쩡히 졸업하고 백수로 남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성공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 이 사회에 맞서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사람들에게 김예슬 씨의 글은 너무나 '아쉽다'. 여기에 '그녀가 원한 건 성공이 아니야!'라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나는 아무런 답변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야?'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나를 찾는 것' 따위의 식상한 답변이 아니라면 '실패'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그녀는 고대 경영학과를 들어갈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똑똑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매체'는 바로 대자보. 고려대 학생게시판에 올렸으면 똑같은 반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즉, 80년대와 같은 방식의 대자보라는 지극히 '대학생적'인 매체를 이용함으로써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끌여들었다. 또한 정문이 아닌 후문에 붙였다는 것은,  그녀의 생각이 주류가 아님을 그녀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던 듯 보인다. 지나치게 개방적인 장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이 모여드는 장소도 아닌. 그런 장소에 대자보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선보인 그녀는 이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이란 인상을 준다. 또한 고려대라는 그녀가 선택하고 버린 타이틀 자체를 보고 이 글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날 때부터 가진 자였구나? 네 복을 발로 차버리는구나?' 하루하루 살기 급급한 사람들에게 객기는 사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터넷의 한 댓글 '지잡대(지방에 있는 '잡'대- 즉, 지방에서 유명한 대학이 아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대학) 다니는 사람이 저렇게 했어도 이럴까'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면 그녀의 행위는 누군가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인터넷 반응을 보니 다들 '용기 있다, 멋지다, 실력으로 인정받길 바란다.' 라는 글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대학생이 아닌 것일까? 대학교에서 배우는 강의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게 느껴지는 사람은 나 뿐인가? 모든 대학은 허상인가? 전공을 배우기 위해 전공 서적을 탐독하는 사람은 이제 희귀종인가? 온라인 상의 반응을 보니 불안해진다. 나의 생각은 남들과 완전히 다른 것인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은 잘못된 것인가? 하지만 난 앞서 밝힌 것처럼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을 좋아하고 이것이 언제나 내게 머무르기를 바란다. 대학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다니는 소시민인가? 이런 물음이 계속 되니 스스로 저널리스트의 자격이 없다란 생각까지 머무른다. 그녀의 용기를 지지하지 않고 있는 나는 저널리스트로의 생각 구조가 혹여 없는 것이라면. 오히려 자퇴를 해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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